-
[독서메모]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3)도서 2024. 4. 13. 17:24728x90반응형
나와 세상에 속지 않고 사는 법
♣ 왜 문제를 극복하려고만 하는가
청년들의 인생 멘토로 알려진 김난도 선생님은 이런 질문을 가장 많이 받는다고 합니다. "선생님은 시련을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어려움에 처해 있는 질문자의 마음이 느껴지기에 선생님은 가능한 한 답변을 피하려고 한답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답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는데, 이때 선생님은 이렇게 말한다고 합니다.
"제 경우에 극복하지 못했습니다. · · · 그냥 지나갈 때까지 견디는 거지요."
10년 전 사미계를 받고 수도암에 머무를 때였습니다. 그때 사중에 이제 막 출가하여 행자 생활을 시작한 분이 있었습니다. 절집의 기본 예법과 염불을 그 행자님에게 가르쳐 주라는 주지스님의 요청에 따라 하루에 한 시간은 행자님과 같이 있었습니다. 두어 달이 지날 즈음 행자님은 저에게 고민 상담을 해왔습니다. 행자 일은 할 만한데 사람 사이의 관계 때문에 너무 힘들다고, 그래서 내일 절에서 나갈 생각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가타부타 말하지 않았습니다. 저 또한 절집의 가풍에 따라, 가는 사람을 붙잡지는 않습니다. 대신 딱 하나의 조건을 걸었습니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보름만 기다려 보라는 것이었습니다. 지금 행자님의 생각이 잘못된 건 아니지만 우선 딱 보름만 견뎌 보라고, 보름 뒤에도 여전히 같은 생각이면 그때 짐을 싸라고 말했습니다. 보름 뒤 선택에는 간섭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보름이 지나 행자님에게 물었습니다. 힘들어했던 관계는 좀 어떠냐고, 절에서 나갈 생각은 여전하냐고 말입니다. 그러나 행자님 표정은 보름 전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들어 보니, 저에게 속내를 털어놓고 난 뒤 골치 아팠던 그 관계 문제가 슬슬 대수롭지 않게 느껴지는가 싶더니, 지금은 생활하는 데 큰 지장이 없을 정도라고 했습니다. 대답을 듣곤 저는 더이상 묻지 않았습니다.
저는 다른 사람 사이의 문제에 웬만하면 개입하지 않습니다. 당사자들이 풀어야 할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스님이라 해도 연세 지긋한 분들에게 나이 어린 제가 이래라 저래라 조언하는 것도 모양새가 맞지 않습니다. 특히나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는 미묘해서 어떤 말이든 조심스럽습니다. 혹 행자님이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사중 사람들에게 무어라 질책하거나, 행자님을 잘 대해 주라는 식으로 양해를 구할 수도 있지만, 그러한 관여가 반드시 옳은 것만도 아닙니다.
다만 제가 일러 줄 수 있는 것은 딱 하나입니다. 무상無常, 즉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을 삶으로 경험으로 상기시켜 주는 것입니다. 보름 전 행자님은 '관계의 어려움'을 문제라고 인식했고 앞으로도 그 어려움이 계속되리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래서 절을 나갈 생각까지 한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은 흐르고 상황은 변하고 문제도 변하고 그 문제를 대하는 나의 마음도 변합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보름의 기한을 제시한 것입니다. 보름이 지나서도 만일 문제가 그대로라면, 그때 짐을 싸서 떠나도 좋다고 말입니다.
세상의 많은 문제는 그 문제가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서 비롯합니다. 이를테면 보름 후에 어떻게 될지 모를 일을 두고 보름 뒤에도 이러할 것이다, 라는 추측에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보름 뒤 일은 보름 뒤의 일입니다. 그 누구도 보름 뒤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지금 나를 고통스럽게 하는 문제가 보름 뒤에도 똑같은 문제로 남아있을지 아무도 모릅니다. 보름 뒤에도 여전히 상황은 달라지지 않더라도, 이를 대하는 나의 마음이 변해서 문제가 문제아닌 것으로 변할 수도 있습니다. 인간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떻게 변할지 그 누구도 모릅니다. 다만 기다려 보면 될 뿐입니다. 기다리면 변합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기다려 보는 것입니다. 제가 행자님께 해준 것은 단지 보름의 시간 여유를 갖게 한 것입니다. 행자님을 고통스럽게 하는 관계의 문제가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벗어나는 데에, 어쩌면 그 보름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뿐이었습니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래의 일을 미리 당겨서 고민하지 마십시오. 그게 문제가 될지 안 될지, 올 지 안 올지, 변할지 안 변할지 저도 당신도 그 누구도 알지 못합니다. 만일 그때가 되어서 문제로 인식되면 상황에 맞춰 그때그때 잘 대응해 나가면 됩니다. 설혹 문제가 된다고 해도, 그 문제를 이겨낸다거나, 극복하거나, 없애려거나 하지 마십시오. 그 문제 또한 변하기 때문입니다. 문제라고 해서 무상이라는 진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시간이 흐르는 것이고, 관계는 변화하는 것이고 나의 마음도 변합니다.
그런 점에서 김난도 선생님의 답은 현명합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문제 극복이 아니라 상황이 변하기를 기다리고 시간을 견뎌내는 데 있습니다. 그렇게 견디면서 시간이 흐르면 문제도 달라지고, 내가 느끼는 부담감도 달라집니다. 지나고 보면 별 문제 아니었는데 왜 그리 심각했었나, 싶은 경험이 우리 인생에는 몇 번 쯤 있지 않던가요. 끊임없이 변화하는 문제를 고정시킬 때 '본래 없던 실체'가 생깁니다. 그 실체는 누가 만든 게 아닙니다. 내가 만든 것입니다. 문제에 맞서 싸우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저 눈앞에 슬쩍 던져놓고, 적당한 거리를 유지한 채 '그래, 니 어찌 변하나 한번 보자'는 마음으로 일상 생활하면서 생각날 때마다 틈틈이 살펴보면 됩니다. 그냥 변하는 걸 바로 보는 것. 이를 달리 말해 '견딘다'고 합니다.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상황이 있을 뿐입니다. 문제는 해결하는 것이지만 상황은 단지 대응하면 그뿐입니다. 우리의 삶에 수많은 문제들이 일어나지만 고정된, 영원한 문제는 없습니다. 다만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만이 있을 뿐입니다. 실제 우리가 삶에서 할 수 있는 일은 그 상황에 대응하는 것뿐입니다. 상황은 그때 가서 파악하는 것이고, 그때 가서 대응하는 것입니다. 그때 가서 해도 늦지 않습니다. 아니, 그때 가서 하는 것입니다. 문제든 상황이든, 결론은 잘 견뎌내고 잘 대응하는 것입니다.
영화 <황산벌>에 이런 명대사가 나오더군요.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게 아니다.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
728x90반응형'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독서메모] 스스로 행복하라(2) (2) 2024.04.24 [독서메모] 스스로 행복하라(1) (7) 2024.04.19 [독서메모] 워런 버핏의 완벽투자기법 (0) 2024.04.12 [독서메모]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2) (1) 2024.04.06 [독서메모] 질문이 멈춰지면 스스로 답이 된다(1) (0) 2024.04.04